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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동 교촌최씨가

가고파요 2015. 5. 23. 22:00

 

청송 심부자와 함께 영남 만석꾼의 대표 주자로 꼽히는 경주 최부잣집은 300여년 간 12대를 이어간

부자로도 유명하지만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했다는 점에서 더 큰 의미를 지닙니다.

 

경주 최씨의 종가, 경주 최부잣집이 위치한 공간은 신라 시대 요석 공주가 기거했던 요석궁이 있던

자리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1700년경 지어졌다고 전해지며 12대에 걸쳐 300여 년간 부를 유지했

습니다. 아흔 아홉 칸으로 지어졌으나 1970년 사랑채와 별당이 불에 타 버렸습니다. 그래도 조선

시대 사대부가의 원형을 보존하고 있어 가치가 큽니다. 최씨 집안에서 여러 대에 걸쳐 빚어온 경주

교동 법주를 비롯해 경주 향교, 2013년 1월 가오픈한 경주 교촌 마을 등이 근처에 자리합니다.

 

경주 최부잣집에 들어서면 먼저 최부잣집의 가르침이 사람들을 맞이합니다. '과거를 보되 진사 이상

벼슬을 하지 마라', '만 석 이상의 재산은 사회에 환원하라', '흉년기에는 땅을 늘리지 마라', '과객을

후하게 대접하라', '주변 100리 안에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하라', '시집 온 며느리는 3년간 무명옷을

입어라'는 육훈(六訓)이 눈에 띕니다.

 

최부자의 1대는 최진립입니다. 2대 최동량은 많은 재산을 물려받고 큰 땅을 구입합니다. 그리고 그 뒤

를 이은 최국선은 흉년이 들어 농민들이 쌀을 빌려간 것을 못 갚자 아들 앞에서 담보 문서를 모두 없애고

죽을 쑤어 거지들에게 푸짐하게 나눠줍니다. 배고픈 보릿고개 때에는 100석의 쌀을 베풉니다. '사방 백

리에 굶어 죽는 자가 없도록 하라'는 최부잣집의 선행 덕분으로 활빈당의 불길 속에서도 최부잣집은

살아남습니다. 하지만 12대 최준에 이르러 나라를 일본에 빼앗기자 '나라가 없으면 부자도 없다'는 신

념으로 독립 자금 마련에 재산을 내놓습니다. 광복 후에는 교육 사업에 전 재산을 기부했습니다.

 

교촌 최씨본가 뒤뜰에 심은 보리

 

 

 

 

자체에서 기와굽는 토굴

 

교촌 김밥을 사기위한 행렬이 꼬리를 물고 줄지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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